네덜란드 출신의 용병 감독 히딩크(62)를 수장으로 한 러시아와 이번 유로 2008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감독인 마르코 반 바스텐(44)의 네덜란드의 경기는 이래저래 주목받는 경기였다. 객관적인 전력은 누가 생각해도 네덜란드의 우세였다. 러시아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스페인에게 4-1 대패를 당한후 나머지 두 경기를 승리해 힘겹게 8강에 오른 반면 네덜란드는 죽음의 조로 불리우던 C조에서 강호 이탈리아와 프랑스, 루마니아를 차례대로 격파하며 승승장구하던 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로 2008 27번째 매치의 결과는 러시아의 3-1승. 더군다나 이날만 놓고 봤을때 러시아의 경기력은 네덜란드보다 우위에 있었다. 네덜란드가 이번 경기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더라도 이런 결과를 예상한 이는 러시아 국민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후반 5분을 남기고 반 니스텔루이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네덜란드의 역전승이 점쳐 졌었다. 하지만 연장전에서 줄기차게 네덜란드 골문을 위협하던 러시아는 연장후반 드미뜨리 또르빈스키(토르빈스키, Торбинский, 로코모찌프)와 아르샤빈(Аршавин, 제니트)의 연속골로 이번대회 최강이라 평가받던 오렌지군단을 침몰시키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번 승리로 인해 러시아는 현재 기적의 팀으로 불리우는 터키와 더불어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의 팀이 된것이다. 더불어 히딩크 감독은 반 바스텐 감독이 말한대로 '가장 성공한 스페셜리스트'이자 '4강 제조기'로써의 명성을 다시금 세계 축구계에 떨치게 되었다. 우리 언론에서 기사 헤드카피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대로 '히딩크 매직'이 또다시 발동한 것이다.
경기장을 찾은 수천명의 러시아 응원단은 경기내내 '러시아'를 연호하며 자국 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했으며 3-1로 앞서는 순간 '말라쯔이(장하다)!'를 외치며 승리의 감동을 만끽했다. 러시아 현지에서는 승리가 확정된 순간 자정이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국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맥주잔을 기울이며 승리를 자축하는 분위기이다. 더불어 러시아 언론은 '우라(만세)'를 외치며 러시아 국가대표팀과 히딩크 감독을 극찬하고 있다. 러시아의 유명한 스포츠 기자인 예브게니 드지치꼽스키(Евгений ДЗИЧКОВСКИЙ)는 자신의 컬럼에서 다음과 같이 이번 경기를 평가했다.
'네덜란드는 훌룡했다. 하지만 모든면에서 러시아가 조금 더 나았다'.
러시아는 향후 이탈리아-스페인전 승자와 27일 결승전 티켓을 놓고 격돌을 벌이게 될 예정이다. 러시아 언론은 첫경기 패배를 안겨준 스페인과의 리턴매치를 은근히 바라는 뉘앙스다. 아무래도 러시아 축구팬들에게 2008년 6월 21일 밤(현지기준)은 금년들어 가장 달콤한 시간이 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