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금융 위기가 러시아만 비켜가고 있는듯한 풍경이다. 국민 GNP나 GDP로 봤을때 국가순위가 그리 높지 않은 러시아에서 이러한 고급 제품군과 고급 서비스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가 뭘까? 바로 이러한 것들이 러시아 올리가르흐(олигарх, 과두재벌, 신흥재벌)를 겨냥한 마케팅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봄 포브스지에서 발표한 것에 따르면 러시아에는 무려 110명의 억만장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상위 100명의 자산은 무려 5천 5백 20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지난 2004년에 비해 4배나 늘어난 수치이다. 러시아 연방 통계에 의하면 이 기간 중에 무려 1890만 명의 러시아인이 빈곤층이 되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다. 올리가르흐들의 자산이 늘어난 반면에 서민층에서는 극빈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소비에트 공화국(소련)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시점과 모라토리움과 같이 국가적인 위기상황에 러시아에는 올르가르흐라고 불리우는 다수의 억만장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은 러시아의 새로운 계급으로 등장하게 된다. 체제붕괴와 모라토리움과 같은 러시아의 경제적 위기 속에서 정경유착을 통해 단기간 내에 갑부가 된 올리가르흐들은 국가의 어려움을 발판으로 삼아 유래가 없는 부를 축적하게 된다. 그들에게 국가의 위기는 기회였던 셈이다. 올리가르흐와 같이 단기간 내에 부를 축적한 졸부들이 등장한 것은 러시아가 처음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봤을때 새로운 경제적 사조가 등장하던 미국의 1950년대와 사우디 아라비아의 1970년대, 일본의 1990년대에도 이와같은 경향이 있어왔다.
올리가르흐는 단기간 내에 억만장자가 된 이들이자 세계에서 가장 사치스런 인물로도 악명이 높다. 이들이 경쟁적으로 장만한 요트와 별장, 자동차, 전용기 등등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들이며 화려함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부의 과시가 금시기 되는 것에 비해 러시아에서는 가진자의 권리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끝이 없을것 같던 올리가르흐들의 위상도 점차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지난 10월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해 지난 5개월간 러시아 재계순위 25인이 입은 손실이 무려 2천300억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한바 있다. 엄청난 금액이지만 전체 올리가르흐들을 휘청이게 할만한 금액은 아니라는 것이 보편적인 평가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그간 러시아 올리가르흐들의 사업 방식을 보았을때 이들의 몰락의 전주곡일뿐 본격적인 하향세는 이제부터라는 것이 러시아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수의 러시아 올리가르흐들의 매매나 투자 방식은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한 합리적인 투자형태라기 보다 정경유착을 통한 한탕주의 방식이 주된 형태였고 더불어 '감'에 의지한 주먹구구식 방식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이러한 올리가르흐들의 사업 방식이 더이상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혀들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정세뿐만 아니라 러시아 정세 또한 올리가르흐들을 불편한 상황에 처하게 하고있다. 단적인 예로 러시아 최고 갑부인 알롁 데리파스카는 영국 규제개혁부 장관인 피터 만델슨에게 정치자금 5만 달러를 주려했다는 뇌물 스캔들로 인해 곤혹을 겪고 있으며, 업친데 덥친격으로 과거 사업 파트너였던 마이클 체니에게 40억 달러짜리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서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올리가르흐들의 위기는 현재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인한 러시아 증권가의 대 폭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난 5월 이후 러시아의 RTS 지표(RTSI)는 71%나 하락했다. 데리파스카는 자신의 소유한 회사의 지분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왔지만, 보유 사업체의 주가가 대폭락을 하면서 은행권에서 심한 자금 압박을 받고 있다. 이는 비단 데리파스카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올리가르흐들 소유의 기업들은 대부분 데리파스카와 같은 방식으로 은행대출을 받아왔었다. 하지만 주가폭락을 계기로 대출을 갚지 못해 담보를 떼일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 정부에서 구제금융을 통해 구제할 의사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 현재 미하일 프리드만의 알파그룹에 20억달러의 구제금융이 지원되었을뿐이다. 하지만 올리가르흐들이 필요로하는 구제금융 자금은 물경 1,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올리가르흐 소유의 기업들의 생사가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번 구제금융을 계기로 러시아 정부가 올리가르흐들 군기잡기에 나선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