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관련된 오래된 농담 중에 '택시기사도 시(詩) 몇 편을 외우고 읇는 나라'라는 것이있다. 다소 불편해 보이는 이 말은 택시기사를 폄하하려는 의도라기 보다는 러시아인과 문학의 밀접성을 설명하는 표현이라고 이해하면 맞겠다. 다만 이 표현을 만든이와 공감하는 이들의 의식세계에 택시기사와 시(詩) 라는 것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공감되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고 본다. 각설하고, 정말로 이 세쳇말처럼 러시아는 '택시기사도 시를 읇는 나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의 맞다'라는 것이다. '거의'라는 부사를 붙인것은 100%라고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만 개인적으로 여지껏 보고 듣고 만나본 택시기사들 대부분은 문학에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문학을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공통된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전 러시아인에 통용되는 말이다. 러시아인들은 자신만이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시 몇 편 정도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외우고 있다.
부모의 문학적 소양이 대물림되는 문화
이러한 러시아인들의 문학과의 밀접성은 초.중.고교와 같은 학교 교육도 크게 한 몫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러시아인들 가정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 가정에서 문학과 예술에 대해 평소 보여주는 부모들의 행동들이 그대로 자식세대들에게 답습되는 것이다. 자식세대는 부모세대의 평소 습성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간에 배우게 마련이다. 물론 2000년대 들어서 이러한 문학에 대한 부모세대의 관심이 이전 세대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문학과 예술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열정은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러시아 가정 문화의 근간을 파헤치자면 러시아어 자체가 문학에 가장 적합한 언어라는 것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러시아어를 번역한 수많은 책들이 전세계에 퍼져 있지만 러시아어 원본으로 된 책의 감동과 뉘앙스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증명한다.
러시아 가정에서의 영육아 교육은 만 1세가 되는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정규교육에 편입되는 만 6~7세 이전까지 이루어진다. 여기서 간단히 러시아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하자면, 러시아 아동들은 6∼7세에 정규교육기관에 취학하여 의무교육기간이 끝나는 8학년(초급학교 4년과 중학교 4년)까지는 동일한 교육을 받는다. 9학년부터는 일차적인 진로선택을 하는데, 일반 고등학교과정(2년 과정)을 계속하거나, 일반 학과 외 특정 분야의 기술교육을 병행하는 기술학교(테흐니쿰, 3~4년 과정)로 진학한다. 대체로 테흐니쿰 졸업은 일반 고등학교 졸업에 비해 선호된다. 그 밖에 재능이 우수한 학생이나 심신, 신체장애자를 위한 특수학교와 군사학교가 있다. 재능이 우수한 학생을 교육하는 일종의 영재학교는 들어가기도 어렵고 졸업하기도 어렵지만 상급학교 진학률이 높기에 선호된다.
갖 돌이 지나자마자 시작되는 문학교육
다시 본 이야기도 돌아와서, 러시아에서 만 1세가 되면 제일 처럼 아이에게 들이미는 것은 뽀로로가 귀엽게 뒤뚱거리고 토마스 기차가 열심히 달리는 영상이 아닌 시집이다. 러시아인들이 최초로 문학을 접하게 되는 시기가 바로 갖 돌지난 시기인 것이다. 이 시기에 접하게 되는 영육아용 시집은 다양한 러시아 의성어로 구성된 10줄 안팎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 대형서점에 가면 '엄마와 함께 읽는 시(Стихи Читаем с мамой)'라는 코너가 별도로 있을 정도이다. 러시아의 부모들은 이러한 영아용 시집을 틈날때마다 아이들에게 읽어준다. 러시아 부모들이 시를 읽어주는 이유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시는 특정 사물이나 개인이 느낀 감동 및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이다. 더불어 리듬이 있고 자음과 모음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언어의 조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문학을 반복적으로 듣고 자람으로써 러시아 아이들은 자국어의 내용이 아닌 리듬감과 두뇌개발을 하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러시아 부모들은 이렇듯 시집을 아이에게 읽어주는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유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부모세대에게 배운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문화 자체가 아이들에게 문학에 대한 기초를 쌓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이러한 시를 통한 반복적인 육아교육은 전 러시아에서 보편적으로 퍼져있기에 6세 미만의 미취학 아동들은 6줄 안쪽의 시 몇 편은 습관적으로 외우고 있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더군다나 딱히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과 교감을 위해 이러한 시 읽어주는 시간을 부모에게 요구하곤한다. 물론 어느정도 세상이치에 눈을 뜨면 고리타분한 시를 외우기 보다는 카운터스트라이크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의 게임에 더 관심을 보이지만 부모들의 조기 반복교육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이다.
엄마는 러시아인들의 첫번째 문학선생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대체적으로 영육아를 대상으로한 가정교육의 주체는 엄마들이다. 여성은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특히나 러시아 엄마들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성(?) 엄마들이다. 혹독한 기후환경에서 태어난 억센 아이들을 대상으로 뭔가를 가르치고 바르게 크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게 마련이다. 러시아 엄마들은 잔소리가 먹히지 않으면 사랑의 매를 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인들은 엄마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아무리 세상 막나가는듯해보이는 악동들도 자신의 엄마만큼은 두려워하는 성향이 있다. 대체적으로 러시아 엄마들은 6세 이전에 아이들과 관련된 모든 전권을 가지고 있어 교육 뿐만 아니라 훈육등을 담당한다. 이러한 러시아 엄마들의 오지랖은 자식 외에도 해당되며 나이가 들면 더욱 범위가 넓어진다. 러시아 할머니들의 타인에 대한 옳고그름의 잔소리는 꽤 유명하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에서 유명한 작가일까?
러시아 문학과 관련되어 한 가지 상식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연결해보자.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가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물론 위대한 문학가들이고 창작가들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이들은 유명한 문학가들 중에 한 명이긴 하지만 위대한 작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러시아에서 '국민작가'의 칭송을 받는 이는 뿌쉬낀(푸쉬킨)이 거의 유일하다. 서두에 말했듯이 시쳇말로 택시기사들도 외우고 있는 시 몇 편 중에 한 편은 뿌쉬낀의 시라고 보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가 지역구라면 뿌쉬낀은 전국구라고 보면 얼추 비슷하겠다.
러시아에서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등이 크게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러시아인들은 이들의 작품을 가르켜 재미도 없고 위트도 없으며 문학적인 기교도 없다고 설명한다. 러시아인들에게 톨스토이의 동화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이 읽혀졌다고 설명하면 러시아인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한결같다. '러시아 작가가 한국에 널리알려진 것은 반가운 소식이긴하지만 도데체 그 재미없는 작품을 왜 아이들에게 읽히는 거죠?'. 간단히 정리하자. 러시아 문학은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틀린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렵고 재미없는 작품들이 국내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유머와 재기가 넘치는 러시아 문학작품이 많이 소개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마디 언급해 봤다.
시적 리듬감이 러시아 아동의 언어능력을 키운다.
글을 읽고 말을 제법하는 나이가 되면 러시아 동화들은 제법 어려워진다. 러시아어 전공자로써 러시아 아동들이 읽는다는 동화책을 처음 읽은 소감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뉴스 사설보다 더 어렵다'라는 기억이다. 단어가 어렵다거나 내용을 이해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동화책에 나오는 러시아어의 시적 뉘앙스를 이해하기 난해했다는 것이다. 이는 나 역시 일반적인 러시아어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러시아어 특유의 운율과 자음과 모음의 조화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부족했기에 기인한 현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린이 동화책은 그림이 많고 단순한 텍스트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러시아(유럽도 마찬가지라고 보지만)의 동화책은 (외국인)어른이 보기에는 꽤나 텍스트가 많고 알쏭달쏭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알고보면 운율이 있고 리듬감이 있다. 이러한 문학적인 훈련을 발판으로 러시아 어린이들은 말을 배우고 자국어에 대한 이해능력을 키운다. 택시기사 뿐만아니라 국민 누구나가 시를 몇 편식 외우고 있는 발판은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 거리를 걷다보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 임산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것을 보고 러시아인들이 2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단편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틀린말은 아니겠다. 다만 위에 설명했듯이 러시아인들은 언어능력과 관련된 육아교육과 관련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문화를 보유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아이의 건강과 관련해서는 부모들이 쌍심지를 돋우고 관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 교육에 있어서는 가정이나 국가나 다소 소홀한 부분이 존재한다. 취약부분은 개선해야되고 장점은 더욱 보강해야되지 않겠는가? 양국의 장점이 합쳐진 자식에 대한 배려야말로 다음세대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