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이미지는 러시아(당시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최초의 휴대전화(cellular phone)다. 이 휴대전화 기술이 개발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58년이었다. 당시 러시아 각 지역에서 국가에 의해 소집된 각계각층의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 완성되었다.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기에 가능한 부산물인 셈이다.
덩치가 제법있는 이 러시아 최초의 휴대폰은 오늘날 휴대폰과 마찬가지로 무선으로 통화하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었다. 근거리용 군사목적 무전기를 제외하고는 유선전화가 당연시되던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던 셈이다. 당시 러시아는 전화를 하려면 특정장소(우체국 등)을 가야했던 시대였다.
이 휴대폰의 제작 목적은 당시 러시아 엘리트 당원들간의 핫라인(hot line) 용도였다. 이 휴대폰을 사용하기 위해 당시 러시아 전역에 꽤 많은수의 송수신탑이 세워졌고 16개의 무선채널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 볼때 턱도 없는 숫자지만 이것만으로도 엘리트 당원들간 긴급 연락을 하는데 충분했다.
들고다니기에 좀 부담스러운 크기와 무게였던 이 휴대폰의 일반적인 위치는 자동차의 트렁크였다. 엄격히 말하면 카폰(mobile phone)이었던 셈이다. 이 휴대폰은 당시로써는 IT계통 첨단 기술이었던 동시 송수신 방식(duplex link)을 사용했으며 150MHZ 대역에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통화가능지역은 송수신탑에서 약 40~50마일(80km)이었다.
이 휴대폰이 양산되어 러시아 엘리트들에게 최초로 보급된 것은 1963년 부터였다. 모스크바 등지의 수도권부터시작된 이 휴대폰의 보급은 이후 1970년 즈음에 전 러시아에 있는 엘리트들에게 보급되었다. 요즘말로 엘리트들간의 네트워크가 완성된 셈이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소위 컨퍼런스 콜(conference-call, 전화회의)이 상시로 발생했던 셈이다. 하지만 이 편리한 도구는 당시 계급이 높은 엘리트들만이 사용했기에 대중에게는 알려지지는 않았었다. 당시 미국에서도 이와같은 종류의 휴대폰 시스템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러시아 보다 다소 느린 1969년부터였다.
1970년 후반기부터 이 휴대폰의 신형모델(위)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전 모델에 비해 다소 작아진 형태이다. 이때부터 휴대폰이 자동차 트렁크에서 탈출하기 시작한다. 이 모델이 나온뒤 당시 가장 선호되었던 휴대폰의 위치는 자동차 조수석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불편함이 해소된 셈이었다.
이 초창기 휴대폰 모델들은 결국 일반 시민에게는 보급되지 않았다. 이유는 당시 통제된 공산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휴대폰이 보급되면 당 입장에서는 통치하는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소통이 부재된 사회는 통치하기가 쉬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