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따스가 웹상에서 인기를 끌기는 끄는 모양이다. 이곳 저곳에서 '비타스''Vitas', 'Vitas Bumac', '아쟁총각'과 같은 검색어로 들어오는 방문객들이 상당히 많이 늘었다. 현재 인터넷 이곳 저곳에서 이 가수의 뮤비와 음악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따뚜(타투)가 여성들에게 제한적인 인기를 끌었다면 비따스는 남녀 모두에게 어필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고음처리 능력에 대한 것이 일차적으로 관심을 끄는 모양이다. 제법 파급력이 있어보인다. 몇 일 전에는 이 가수에 대한 가십성 기사도 나올 정도로 이슈화 되고 있다. 이번 시류에 편승하는 포스팅을 하나 하기로 하자. 어쨌거나 러시아 가수 아닌가?
비따스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비따스((본명 : 비딸리 블라다소비치 그라체프(Виталий Владасович Грачев))는 라트비아 공화국의 도시 '다우가(브)삘스(Даугавпилс)'에서 1981년 2월 19일에 태어났다. 이후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쉬꼴라(러시아 초중고 과정)를 다녔다. 비따스의 부친은 아직도 이 도시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비따스의 모친(릴리야 미하일로브나(Лилия Михайловна))은 반년 전에 사망했다.
쉬꼴라 졸업 후 변두리 극장에서 성대모사등으로 무대에 오르던 비따스는 러시아 유명 프로듀서인 'S. N. 뿌도브낀(비따스의 현 프로듀서)'의 눈에 띄어 2000년 12월 2일 '오페라 № 2(Опера № 2)'란 곡으로 러시아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 오페라 № 2는 비따스가 14살에 작곡한 곡이었다.
<비따스의 수상 약력>
-두개의 정규앨범 (기적의 철학(Философия чуда, 2001), 웃어(Улыбнись, 2002))으로 2001년과 2002년 골든디스크상을 수상.
-두개의 싱글앨범(오페라 № 2와 굿바이)을 발표. 이중에 오페라 № 2는 발표되던 해 러시아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이었이며 러시아 프로듀서 상을 비따스에게 안겨줌.
-2001년 '꼼소몰스까야 쁘라브다' 선정 가장 주목받는 뮤지션으로 선정.
-러시아 연말 음악 시상식인 러시아 '뼤스냐 고다(Песня года - Song of the Year)'의 2000, 2001, 2002년 수상자로 선정.
-러시아 연말 음악상인 '잘라또이 그라모폰(Золотой граммофон - Golden Phonogram)' 의 2001년('오페라 № 2')과 2002년(웃어) 수상자로 선정.
-러시아 연말 음악상인 '빠디움(Подиум - podium)'의 2001년과 2002년 팝분야 최고의 곡으로 선정.
-연말 음악상 '나로드느이 힛(Народный хит - 국민 히트)' 작곡상을 2001년과 2002년에 수상.
-러시아 라디오 HIT FM(Хит ФМ)에서 수상하는 'INSDISPUTABLE HIT(100-пудовый хит)'의 2001년 수상.
-2002년 국가 음악상인 '오바찌야(Овация)'의 최고 싱글가수로 선정.
-2003년 3월까지 러시아를 포함하여 호주, 미국, 캐나다, 이스라엘, 독일, 카자흐스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그루지아, 타지키스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아등에서 총 264회의 콘서트 기록.
2002년 세계 마약퇴치 협회에 초대를 받고, TV시리즈에도 얼굴을 보이기 시작하는 등 비따스는 러시아 인기 연예인들이 다들 그렇듯이 점점더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한다. TV시리즈에는 연기뿐만 아니라 드라마 OST에서 2곡의 곡을 직접 작곡하기도 한다. 더불어 이 TV드라마의 차기 시리즈의 출연 계약까지 하게된다.
2003년 1월 6~11일 델리에서 열린 인도 영화제의 오프닝 무대에 서게된다.
2003년 봄 비따스는 마야꼽스끼 극장에서 황금마스크 상을 3번이나 수상한 유명 연극감독 드미뜨리 체르니아꼬프가 연출하는 작품에 출연해 연극무대에까지 출연하게 된다. 비따스는 이 연극에서 9살난 아이 역할을 맡아 Key role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3년 11월 모스크바에서 콘서트를 연 비따스는 자신의 새로운 싱글곡 '내 어머니의 노래'를 발표한다. 더불어 자신이 작곡한 19곡의 노래를 선보인다.
2004년과 2005년 비따스는 세계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러시아와 미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독일, 카자흐스탄, 이스라엘과 발틱 국가등에 대규모 콘서트를 진행했으며 2006년 6월에는 중국에서 콘서트를 여는등 점점더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러시아 쇼비즈니스계에서 비따스는 그야말로 전후무후한 캐릭터였다. 제법 귀티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박박 밀은 민머리에 문어모양의 써클렛(혹은 은색 모자)을 썼으며, 몸에 달라붙은 번쩍거리는 은색 무대의상은 70년대 SF영화의 외계인을 연상시켰다. 더군다나 이런 컨셉의 의상은 매번 무대에 오를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변형시켜 등장했다. 더불어 웃는둥 마는둥 묘한 미소를 시종일관 유지한채 부르는 노래 속 고음부는 초음파를 연상시켰다. 이런 가수는 러시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것이었다. 얼핏보면 우스꽝스러울수도 있었지만 비따스는 신비한 이미지가 더 강했다. 이런 튀는 무대매너 뿐만 아니라 노래에 실린 비따스의 목소리는 묘한 마력이 있어 러시아인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비따스의 목은 200만달러의 보험에 가입되어 있기도 하다.)
이때 러시아 연예계에서 관행적으로 묵인해오던 립싱크를 통해 TV무대에서 등장하던 비따스에게 제기된 의문점이 그의 목소리는 컴퓨터로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목소리는 남성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높았다. 더불어 이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을 거세했다는 풍문과 동성애자라는 소문도 같이 돌았다. 러시아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자료는 없지만 대략 4~5옥타브를 넘나드는 비따스의 성량은 '1인 오케스트라'라고 불리웠던 프레디 머큐리 이후엔 보기 힘든 것이었다. 이런 의견들은 러시아에서 넓게 공론화 되었던 사항이 아니었기에 비따스 측에서도 딱히 입장발표는 하지 않았다. 훗날 비따스의 콘서트에서의 라이브를 통해 밝혀지기 전까지 '카더라'식 소문은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현재 비따스는 데뷔해에서부터 3년차까지의 밀리언셀러 타입의 가수에서 점차 스테디셀러 타입의 가수로 변모해가고 있다. 더불어 과거 엽기적인 컨셉에서 벗어나 고급스런 이미지로 전환중이다. 그의 파격적인 컨셉이 좋았던 이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런 모습일수도 있겠지만 그의 변모된 모습을 더 좋아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 발표 앨범:
1. 안녕(Good-bye, 2001) 2. 오페라 №2(Опера №2, 2001)
3. 기적의 철학(Философия чуда, 2001) 4. 웃어 (Улыбнись, 2002)
5. 어머니(Мама, 2003) 6. 내 어머니의 노래(Песни моей мамы, 2003)
7. A Kiss As Long As Eternity (Поцелуй длиною в вечност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