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휴일개념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면....
오늘날 러시아에서 1년 중 가장 명절분위기가 나는 시기는 바로 신년과 함께 시작되는 연초일 겁니다. 새해 첫 날에 쉬는 것을 비롯하여 1월 7일이 성탄절이라 동네가 성탄트리 장식으로 온통 축제분위기로 되어 있고, 이러한 분위기는 러시아 정교회가 중시하는 구력 신년인 1월 14일까지 지속됩니다(소위 러시아의 구정이라고나 할까요...^^). 이 기간에는 많은 업체와 회사가 문을 닫고 쉬는 경우가 많아 그야말로 '긴' 명절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러시아의 설날은 한국과 같이 1년에 두 번 있는 것일까요? 현재 국가가 인정하고 있는 공식적인 신년은 1월 1일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대표적인 종교기관인 러시아 정교회의 경우 교회력상 신년을 1월 14일(교회력상 1월 1일)로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마치 새해가 두 번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18세기 이전에 정교회가 간주하고 있던 신년은 9월 1일이었습니다. 더운 여름철이 지나가고 시원한 계절이 도래하는 때를 교회는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표트르 대제 이전의 이러한 모습은 바로 8월 31일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고 이 날은 교회력상 고행자 시메온(Simeon)의 날이었습니다. 자정이 되면 교회는 신년의 도래를 알리는 종을 쳤답니다.
이러한 종교적 색채의 신년행사는 표트르에 의해 지극히 세속적인 행사와 혼합되게 되는데 궁정만찬, 민중에 대한 접대, 무도회의 거행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황제의 법령에 의하여 신년 축하행사에서는 전국 도처에서 한밤중에 교회의 종소리와 함께 엄숙한 기도가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포와 소총의 발포 소리로 이어 졌습니다.
표트르가 단행한 신년축일은 스뱌트키(Sviatki: 성탄절 주간)를 두 기간(12. 25-12. 31과 1. 1-1.5)으로 나누면서 스뱌트키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신년축일은 1월 1일로 표기된 두 개의 교회축일과 겹치게 되었는데 하나는 대축일인 '주의 할례의 날'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성자 중의 한 사람인 바실리를 기념하는 '바실리 대성인의 날'이었습니다.
러시아에서 바실리 대성인의 날이 특화되고 또한 그 명칭이 '돼지우리'로 고착된 것은 그리스도교 수용 이전의 옛날 사회에서 1월 1일에 돼지를 잡아 번제를 바치던 관습이 정교회의 축일에 의해 흡수된 결과입니다. 그러한 자취는 19세기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신년이 되면 축제용으로 쓸 돼지를 제물로 잡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모습은 이 무렵이 되면 동네 시장에서 새끼돼지를 통채로 사고 파는 러시아인들의 관습으로도 남아 있습니다.
러시아의 성탄절은 왜 1월 7일 일까요? 바로 이에 대한 대답은 위에서 지적한 대로 역법개혁과 관련됩니다. 성탄절은 12월 25일입니다. 그런데 구력을 고수하고 있는 러시아 정교회의 경우 당연히 12월 25일이 성탄절인데 단지 신력으로 볼 때 1월 7일일 뿐입니다(13일의 차이). 12일의 차이가 나는 19세기의 경우 신력으로 1월 6일이 성탄절이었을 것입니다. 성탄절은 교회축일이므로 당연히 교회가 규정하고 있는 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러시아는 국교로 러시아 정교를 택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명절로 복귀된 것은 소련의 와해 이후의 일인데, 이는 공산주의시기에 교회축일이 전면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현재 러시아의 1월 2주간은 가히 신년-성탄절-신년(구력)으로 이어지는 명절 분위기로 충만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유난히 길고도 추운 겨울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언제나 따뜻한 태양을 그리워했고 봄을 기다렸습니다. 이를 표시하는 행사가 하나의 축제로 나타난 것이 마슬레니차(Maslenitsa)입니다. 옛날 러시아인들이 즐기던 마슬레니차는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던 토속신앙적인 전통명절입니다. 따라서 본래 마슬레니차는 시기적으로 춘분 무렵에 해당되었으며 또한 그리스도교가 러시아 땅에 들어오기 이전에 있었던 오래된 관습이기도 합니다.
이 날이 시작되면 온 동네는 봄을 맞이하는 떠들썩한 잔치로 가득차게 됩니다. 사람들은 한 주일 내내 고기를 먹지 않으며(禁肉), 대신 전통적인 음식인 블린(bliny)을 먹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또한 거리에서는 눈이 쌓인 언덕을 배경으로 썰매타는 아이들의 모습을 비롯한 각종 겨울을 보내는 행사로 분주합니다. 특히 모닥불을 피움으로써 러시아인들은 겨울의 동반자인 초자연적이고 부정적인 악마를 물리치고 죄를 씻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마슬레니차는 매해 행해지던 규칙적인 명절이었고, 도시나 시골에 관계없이 모든 지역의 민중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전통도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일단 단절 되었습니다.
마슬레니차 전통은 소련 시기인 1950년대에 '러시아 겨울의 날'로 나타났는데, 이는 여름철 축제인 '러시아 자작나무의 날'과 함께 국가에 의해 복고된 전형적인 세속명절이었습니다. 러시아 겨울의 날이 되면 도시와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산책을 하고, 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얼음목마를 타며, 트로이카 마차를 타고 시내를 달리는 등 일대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관습은 과거 마슬레니차때의 관습과 거의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봄이 되면 현재 러시아에는 먼저 교회축일인 부활절이 먼저 대두됩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경우 부활절은 축일 중의 축일이며 성탄절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부활절이 되면 교회에서는 가장 성대한 의식이 거행되는데, 자정이면 십자가 행렬에 이은 부활 자정미사가 수 시간 지속됩니다. 가정에서는 색칠을 한 부활달걀과 쿨리치(kulich)라는 빵을 미리 만들어 교회에서 축성을 받고 부활절을 축하합니다. 러시아인들에게 부활달걀은 새로운 생명과 자연, 대지 및 태양의 소생을 상징하며, 일부 먹기도 하였으나 일년 내내 부활달걀을 소중히 간직합니다.
세속화가 많이 진전된 현대에도 부활절이 되면 신자나 비신자가 교회에 모여들고 심지어 대통령같은 정치적 인물들로 관심을 표명합니다. 시골에서도 당연히 교회를 중심으로 러시아인의 일치를 이루며 이러한 모습은 가히 민족적 전통을 표방하는 것으로도 비추어 진다. 부활절도 성탄절처럼 공산주의시기에 폐지되었다가 체제전환기에 '부활되어' 오늘날 러시아인들의 최대 명절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5월 1일은 통상 '노동자의 날'로 그려지는데 사실 러시아 경우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소련 시기에는 '혁명기념일'과 함께 큰 기념일인 동시에 국가적 명절이나 다름없었습니다. 60년대 중반부터는 노동절의 쉬는 날이 이틀로 확대되면서 상당한 정도로 가족과 친척과의 교류 형태가 바뀌게 되었는데, 이는 본래 과거 성자들의 축일이나 부활절에 나타났던 현상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떠나가 있던 자식들이 아버지 집에 다녀오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도시와 시골 주민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축일을 더 즐겁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이날이 되면 대도시에 사는 친척과 친구집을 방문합니다.
사실 5월 1일은 원래 노동자의 날이라기보다는 귀족들의 나들이 날이었습니다. 18세기에 표트르 대제가 '마요브카'(Maevka)라는 날을 5월 1일에 제정하였는데 이 날은 대다수 도시민들이 점심때까지만 일을 했다. 날씨가 허락한다면 오후 2시 이후에 많은 사람들은 각자 먹고 마실 음식을 준비하고, 어떤 사람은 사모바르(러시아 주전자)를, 또 어떤 사람들은 아코디온, 기타, 발랄라이카 등을 챙겨서 봄을 맞이하는 나들이를 저녁 늦게까지 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각 도시의 마요브카는 해당 민중들의 행락관습으로 자리잡았고, 혁명으로 인해 노동자의 날로 대체될 때까지 제정 러시아의 전형적인 세속명절이었습니다.
여름과 가을의 경우 앞서 말한 '러시아 자작나무의 날'과 '10월 혁명기념일' 정도가 명절의 한 부류로 볼 수 있는 날입니다. 러시아 자작나무의 날은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는 명절인데 이때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여름나무이며 높이가 매우 큰 자작나무가 울창하게 될 때입니다. 역시 도시와 시골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베료즈카(자작나무) 아가씨들이 마을 손님들을 '빵과 소금'으로 접대하고 꽃을 선사하면서, 모여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줍니다. 러시아 전통민속춤인 호로보드가 이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날은 민족적인 특성이 복고된 전형적인 축제였습니다.
소련 시기에 대대적인 날이었던 혁명기념일이 오늘날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된 채 남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국제 노동자 단결의 날'(5월 1일)이 '봄과 노동의 날'로,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기념일'(11월 7일)은 '단결과 화해의 날'로 그 명칭이 바뀌고, 또한 성탄절이 국가명절로 추가된 것이 오늘날 러시아인들이 지니고 있는 명절의 외형적 모습입니다.
아울러 3월 8일에 여자들과 아가씨 및 여학생들에까지 꽃을 선물하는 일도 잊어서는 안되는 날일 것이다. 러시아 여성들이 1년 중 가장 극진한 대접을 받는 '여성의 날'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