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내내 하얀 눈과 칠흑같은 밤으로 뒤덮여 있는 것 같은 나라 러시아. 개방된지 십년도 넘었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종교와 민족, 경제, 문화가 우리네와는 판이하게 다른 러시아 사람들은 어떤 축제를 즐길까? 다른 여느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는 몇백년의 전통을 가진 축일이 있다. 농촌 절기, 혹은 기독교와 관련된 축일이 그것이다. 본래 농경 민족인 고대 슬라브 인들은 파종, 수확 등 농촌 절기에 따른 축일을 기념했다. 988년 러시아의 기독교(정교) 도입은 축제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적 축제는 민간 신앙적 요소가 강한 농촌 축일을 대체하거나 혹은 원래의 축일과 융합하여 러시아 인들의 삶 속에 자리를 잡아갔다. 18세기 표트르 대제의 개혁, 1917년 소비에트 혁명, 그리고 20세기 말의 페레스트로이카를 겪으면서 각종 경축일들은 러시아 달력에 새로이 등장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경축일을 기념하는 것은 아니다. 집안의 관습이나 개인의 생활 방식에 따라, 혹은 사회 집단별로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는 분명 다르다.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 현대 러시아 인들에게 의미가 있는 축일로는 신년, 마슬레니짜, 부활절, 따찌야나의 날, 여성의 날, 노동절, 전승기념일 등을 꼽아야 할 것이다.
새해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즐거운 축일은 연말 연시 기간이다. 연말이 다가오면 온 러시아는 새해를 맞는 기쁨과 기대감으로 술렁인다. ‘스뱌트키’, 즉 새해를 전후로한 2주간은 전통적으로 가장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 ‘스뱌트키’는 원래 민간 신앙적 요소가 강했던 러시아의 동지 축제 ‘콜랴다’(스뱌트키 기간때 부르는 노래를 뜻함)가 러시아 정교의 정착과정에서 기독교적 요소와 융합되어 변모된 것이다.
스뱌트키는 12월 24일(신력으로 1월 6일), 예수 탄생 전야에서 시작하여 12월 31일을 정점으로 하여 1월 6일(신력으로는 1월 19일) 예수의 세례일로 마무리된다.
신력이라고 흔히 부르는 그레고리우스 력이 일반화된 것은 소비에트 체제가 성립되고 난 이후였다. 1918년 2월 14일부터 새 달력이 적용되었는데 구력, 즉 율리우스력으로 2월 1일은 2월 14일로 정해졌다. 현재까지 러시아 정교에서 예수 탄생일을 1월 7일에 기념하는 것은 이와 같은 계산 차이와 관계가 있다.
농경 사회의 풍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스뱌트키는 어떻게 예수 탄생일과 겹쳐지게 되었을까? 크리스마스가 기독교 축일이 된 것은 니케아 공의회에서였다. 크리스마스는 경쟁 종교였던 미트라교의 태양신 탄생 축일인 12월 25일을 대체한 것이다. 그런데 슬라브 농경 민족이 성탄절을 받아들인 것은 종교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태양의 순환 주기와 관계가 있다. 농경 문화에서 겨울 축제의 시작은 동지가 지나서 태양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이었다. 즉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태양의 탄생을 신앙 생활의 빛인 예수의 탄생으로 받아들이면서 러시아 민간의 겨울 축제가 예수 탄생일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스뱌트키의 시작과 끝은 예수의 탄생과 세례였지만 농경 사회의 관습과 민간 신앙적 측면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썰매타기, 눈싸움, 춤, 점치기나 가장 무도회, 갖가지 놀이 등으로 농민들은 즐겁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일상의 잡무에서 벗어나 그간 싸였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만약 한국인들에게 토정 비결이 연말 연시에 흔히 있는 행사의 하나라면 러시아 인들에게는 점치기가 스뱌트키 동안 성행했다. 요즘도 띠별, 별자리 운세 보기는 러시아 인들에게 무척 보편적이다. 한 해가 저무는 이 시기는 가장 혼돈스럽고 무질서한 때로 여겨졌다. 점치기가 널리 퍼졌던 이유도 바로 이 때에 저 세상의 귀신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할 수 있다고 여겼던 탓이었다. 예수의 세례는 이와 같은 어둠과 악의 권력을 물로 씻어내는 것을 의미했기에 스뱌트키를 마무리하는 날이 되었다. 스뱌트키의 전통적인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지만 현대 러시아 인들에게 새해 전후의 이주간은 슬라브 선조들에게 이상으로 의미있는 시간이다. 스뱌트키 주간의 정점은 바로 12월 31일 자정이다.
신년 축일은 러시아의 축일 가운데 종교, 직업, 민족, 이데올로기 등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가 깊은 명절이다. 12월 31일에는 가족, 친지,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몇 시간 후 다가올 새해를 잔뜩 기대하며 잔치를 벌인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혹은 손목 시계를 보면서 열, 아홉, .. 하나를 외치고 자정이 넘어가는 순간 폭죽을 터트리거나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새해를 축하한다. 어둡고 추운 1월의 새벽이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거리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이나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궁전 광장, 그리고 다른 지방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도 남녀 노소가 모여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면서 소원을 빌고 새벽까지 유쾌한 축하 행사속에 새해 첫날을 맞이한다.
새해 축하 관습은 오랜 농경 사회의 전통이었다. 농경 사회에서 새해는 대체로 자연이 재생하는 시기, 즉 봄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케사르가 통치하기 전까지는 로마인들도 새해를 3월로 보았던 것이다. 서유럽에서 1월 1일을 새해로 맞이하게 된 것은 15세기에서 18세기를 거치면서 였다. 전통적으로 농업국가였던 러시아는 양력이 아닌 음력을 사용했다. 달(Mesiats이라는 말이 약 29일에서 30일간의 한달 주기를 나타내는 단위였던 것이다. 10세기 경 고대 러시아 국가는 3월 1일을 신년으로 기념했는데 그것은 농사주기의 시작에 맞춘 것이었다. 약 5세기가 지난 후 1492년 이반3세가 9월 1일을 새해로 규정하고 성대하게 신년 축하 행사를 치루도록 칙령을 내렸다. 그것은 비잔틴에 뿌리를 둔 전통이었다.
1월 1일을 신년으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삼백여년 전부터 이다. 1700년 율리우스 력을 채택한 표트르 대제의 칙령과 더불어 러시아는 1월 1일을 신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천지창조로부터 7208년이 되는 그 해는 기원 후 1700년으로 바뀌었다. “이 좋은 시작과 새 세기를 축하하는 뜻에서 새해를 즐겁게 축하하라. 거리와 대문들은 소나무, 전나무 등 가지로 장식하고 축포를 쏘며 폭죽과 불꽃을 마음껏 터트려라.” 표트르의 칙령에 따라 트리를 장식하는 관습이 러시아에 소개되었다. 또 표트르 1세는 첫 폭죽을 쏘아 신년을 알렸고 축제는 약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본격적으로 세속 문화를 받아들였고 신년 축하 행사도 정착되어 갔다.
스뱌트키는 민간 신앙의 요소를 채택하면서도 기독교 명절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전 기간 동안 육식을 피했다. 그러나 새해 만큼은 그 세속적 의미가 강했기 때문에 금식에서 제외되었다. 일년 내내 새해 첫날처럼 산다고 믿었기 때문에 새옷을 입고 즐겁고 배부르게 새해를 맞도록 노력했다. 사람들은 그간의 소박한 상차림에서 벗어나 기름진 음식이나 고기 등 가능한한 풍요로운 식탁을 차렸다. 또한 표트르 대제가 9월 1일이 아닌 1월 1일을 새해로 채택하고 정교 전통보다 네덜란드, 서유럽의 신년 축하 의식을 받아들임으로써 러시아에 유럽 스타일의 새해 전통이 성립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러시아에도 구정의 개념이 있다는 것. 이미 새 역법이 정착된 이후 구력에 따른 새해는 큰 의미가 없으나 여전히 1월 14일(구력 1월 1일) 구정을 축하한다는 인사는 러시아 인들에게 널리 퍼져있다.
마슬레니차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특히 소비에트 정권이들어선 이후에 이 유형의축제들은 민중들의 삶에서 그 자리를잃게 된다. 그러나 시대와 체제를 막론하고 반드시 지내고 넘어간 축제가 있다. 마슬레니짜와 부활절이 그것이다.
마슬레니차는 겨울의 마지막 언저리에서 봄을 맞는 축제를 일컫는다. 마슬레니짜는 농경문화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축제이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으며 한해의 농사 채비를 새롭게 갖춘다는 의미를 지니는 행사이다. 원래 마슬레니차는 농사 절기에 따른 한해의 시작, 즉 음력 삼월에 시작되었다. 정교가 들어온 이후 이 축제는 봄 보다는 겨울에 가깝게 옮겨졌다. 교회는 마슬레니차를 한주일로 줄이면서 금식기간 전으로 옮겼다. 정교 달력에 따르면 부활절 전 56일에 마슬레니차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마슬레니차 기간은 아직 추운 2월 중순에서 3월 초이기 때문에 봄맞이라기 보다는 겨울 보내기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러시아어로 마슬러는 버터를 일컫는데, 마슬레니차라는 명칭은 이 기간 동안 육식 대신 버터가 허락된데서 유래한다. 고기 대신 기름, 버터, 생선, 계란, 특히 우유나 치즈와 같은 유제품은 허용되었기 때문에 치즈 주간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직은 추운 겨울의 끝자락이지만 이 기간 동안 배부르게 먹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일년 내내 가난하고 불행하게 산다고 여겼기 때문에 마슬레니차는 가장 흥겨운 축제 중의 하나가 되었다. 농촌공동체의 축제였던 만큼 마슬레니차는 가족, 친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의식을 포함하고 있었다. 동그랗고 얄팍한 러시아식 부침인 블린은 마슬레니차 기간에 먹는 상징적인 음식이다. 이밖에도 썰매타기나 눈싸움, 각종 경기 등으로 사람들은 분위기를 달구었다. 마을별로 패를 나누어 싸우는 일도 흔했는데 이때 사람들이 흘린 피는 땅을 굳게 만들고 수확을 촉진한다고 믿었다.
마슬레니차 기간의 마지막날은 정화의 날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의 높은 곳, 얼음이 언 호수나 강에서는 커다란 모닥불을 피웠는데 이때 모든 주민들은 쓸모없는 물건들, 그리고 마슬레니차를 상징했던 허수아비를 동시에 태워버렸다. 악한 운명의 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기원이 여기에는 담겨있다. 마슬레니차는 시간이 흐르면서 절기와 관계된 의식이라기 보다는 순수한 놀이와 축제로 성격이 굳어져 갔다. 유흥과 쾌락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이었으며 흥겨운 소음과 놀이 속에서 사람들은 악과 증오, 불쾌함과 피로를 해소했다.
부활절
러시아 정교에서는 예수 탄생일보다 부활절이 훨씬 의미있는 날이다. 세상의 부활과 갱생, 인간의 구원,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삶의 승리를 상징하는 축일로서 부활절에는 가장 성대한 의식이 거행되었다. 러시아어로 부활절을 의미하는 파스하(Paskha)는 유태인들이 이집트의 포로 상태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여 정해진 구약의 축제일인 유월절의 명칭으로부터 유래되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따라 부활절은 춘분이 지난 후 첫 보름달이 지난 첫 일요일로 정해졌다. 부활절은 양력으로는 4월 4일에서 5월 8일 사이에 있다. 교인들은 교회에서 부활을 맞기위해 토요일 저녁부터 교회에 모인다. 밤 12시에는 부활한 예수를 맞기 위해서 교회 주변을 도는 십자가 행렬이 있다. 십자가 행렬은 닫혀 있는 서쪽 문앞에서 멈추는데 그것은 돌로 닫히고 예수가 묻힌 동굴을 의미했다. 교회가 없던 벽촌에서 신자들은 작은 기도소나 헛간 등에 모여 부활절을 기념했다. 혁명이 일어나고 교회가 활동을 중지한 이후에도 부활절을 기념하는 전통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특히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 이후 정교의 의미가 확대되면서 부활절은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분주한 축일중의 하나가 되었다. 엄격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러시아 사람들은 아직도 금식 기간을 지킨다. 부활절이 사순절 이후에 찾아오는 관계로 사람들은 부활절 아침상을 기쁘게 맞이한다. 반드시 준비하는 음식은 부활절 계란과 쿨리치, 응유 과자인 파스하가 있다.
새로운 생명과 자연, 대지, 태양의 소생을 의미하는 달걀은 부활절의 상징이었다. 러시아 정교도들은 사순절 이후 처음으로 달걀을 먹게 된다. 이들은 부활절 전날 달걀을 장식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공들여 장식한 달걀 선물하기를 즐긴다. 그들은 일년 내내 부활절 달걀을 소중히 보관했다. 부활절 달걀을 가지고 ‘예수께서 부활하셨네’라고 말하면 그에 답하여 ‘참으로 부활하셨네’ 라고 말하며 달걀에 세번 입을 맞추는게 관례다.
<현대의 축일들>
‘따찌아나의 날’위의 축일들은 농경 사회 및 기독교적 의미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새롭게 도입되어 널리 기념되는 축일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독교 순교자인 ‘따찌아나의 날’ 1월 25일은 러시아에서 대학생의 날이다. 엘리자베따 여제는 1755년 따찌아나의 날에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의 창립에 관한 칙령을 내렸던 것이다. 신자들은 성녀 따찌아나의 순교의 의미를 기억하는 날이지만 대학생들은 첫학기를 마치고(러시아의 첫학기는 9월 1일에 시작한다) 짧은 방학을 시작하는 날이다. 학생들은 콘서트, 연극 등 각종 행사를 조직해서 젊음을 발산한다. 러시아의 나이트 클럽에 발디딜 틈이 없는 날 중의 하나가 바로 따찌아나의 날이다.
‘여성의 날' 3월 8일 여성의 날은 소비에트 혁명 이후에 도입된 대표적인 축일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여성의 날은 경제, 사회, 정치, 문화 생활 분야에서 남녀 평등을 이루고 여성의 권리를 확보하는 날로 지정되었다. 과거 소비에트 체제에서 강하게 드러난 정치적 색채들은 이제 거의 퇴색했으며 휴일도 아니다. 그러나 많은 남성과 여성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대한다.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꽃, 사탕, 초콜렛 등을 선물하며 구애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는다. 어머니, 이모, 혹은 여자 선생님들에게 꽃을 선물하는 것은 빠트릴 수 없는 3월의 ‘제의’다. 주로 직장에서 여자 동료들끼리 기념하는데 거리는 갖가지 화려한 꽃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전승 기념일
정치적 축일인 노동절, 혁명 기념일 등은 이제 형식적인 국경일로 남아 있으나 5월 9일 전승일 만큼은 여전히 전 국민의 축일이다. 해빙과 결빙이 지겹게 반복되는 3,4월이 지나고 해가 부쩍 길어지는 이때에 러시아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2차 대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축포와 불꽃 놀이가 이 날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퇴역 군인들의 퍼레이드를 위해 거리는 온 종일 통제된다. 전쟁의 아픔을 겪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전승 기념일이란 한갓 휴일에 지날 수도 있지만 온 국민은 너나 할 것 없이 승리의 기쁨과 재생의 환희에 휩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