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재학시절 그리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밀리다 못해 떠밀려서 학생회 활동을 몇 해 한 적이 있었다. 학과 학생회의 임원으로써 해야 할 일 중에 겨울철 수능시험 후 수험생들이 학교로 입학 원서를 들고 와 서성일 때, 따뜻한 차와 커피를 대접한다는 빌미로 학과 입학상담을 하는 것이 있었다.
대부분 상담은 당사자인 수험생들보다는 수험생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 되시는 분들이 받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당시 수험생의 부모님들이 우리의 설명 뒤에 한마디씩 하는 질문은 공교롭게도 거의 다 비슷한 표현이었다.
“소련 말 배워서 어디다 써먹어요? ”
당시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Soviet Union, 러시아어로는 ‘СССР (에스에스에스에르)라고 발음한다.)', 소위 '소련(蘇聯)'이라고 불리우던 러시아가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하고(물론 아직도 러시아에는 ‘공산당’이 제1야당으로 엄연히 존재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국가 명을 러시아로 환원(還元)한지 이미 7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에게 ‘러시아’는 ‘소련’이란 이름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현재에도 소련이라는 명칭으로 러시아를 지칭하시는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여전히 인식변화가 더디다는 것을 느낀다.
모스크바의 건립자 "유리 돌거루끼"의 동상이다. 붉은 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모스크바의 건립자보다는 고급 보드카의 상표명으로 더 유명하다. |
- 추운나라, 마피아, 발레, 테러, 샤라포바(샤라뽀바), 타투, 나이트클럽 무희들 ..... -
최근 설문을 한 결과, 위에 열거한 것들이 ‘러시아’ 하면 떠오른다고 한다. 신문 사회면에서 유학생 피습 사건이니 총기 사건, 인질 사건, 폭탄테러 사건, 치친야(체첸) 전쟁과 같은 자극적인 사건들에 대한 기사가 왕왕 소개되고 있으니, 어찌보면 이 정도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러시아라는 나라의 이미지인 것 같다. 테니스 선수인 샤라포바(샤라뽀바)와 여성 듀오 ‘타투’가 들어간 것이 수년 전 설문에 비해서는 그나마 긍정적인 요소들이 많이 추가되었다 할 수 있겠다.
소위 '테트리스 궁전'이라고 불리우는 붉은 광장에 위치한 '성 바실리 성당'은 어쩌다보니 러시아를 상징하는 건물이 되어버렸다. 러시아에 수많은 건축물들이 있지만 바실리 성당은 아름다운 건축물임과 동시에 내/외국인들에게 노출빈도가 높은 붉은 광장에 있다는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
위의 설문 이외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러시아는 대략 ‘잿빛 하늘에 사시사철 겨울날씨에 털모자와 털코트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우선 기본적으로 러시아에 대해 길지않은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다.
러시아는 국토 17,07만㎢ (한반도의 78배 정도)이며, 육지면적의 7분의 1을 차지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나라이다. 이중에 국토의 절반은 삼림 지대이다. 동서로는 배링 해협을 사이에 두고 미국 알래스카주와 마주하며, 서쪽으로 동유럽 평원으로 이어지기까지 약 1만 1,000 km이다. 남북으로는 북극해에서 남쪽으로 아프가니스탄 국경 북쪽까지 4,500km이다.그러나 이렇게 넓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전국토의 1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는 1억4천450만여명(2004년 기준)이다. 국토 면적에 비해서는 그리 많지 않은 인구이며 이 인구는 매년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중 약 7천만 명이 흡연 인구라고 한다. 국민의 절반이 흡연자인 셈이다.
시차는 한국과 6시간(한국+) 차이가 나며, 서머타임(3월~9월) 기간에는 5시간 차이가 난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스크바의 자정 시간에 한국은 오전 6시인 셈이다. 더불어 러시아는 국토의 넓이가 방대하여 무려 11개의 시간대를 사용하고 있는 국가이다.
한 겨울 모스크바 도심 공원에서 열린 얼음 조각 전시회 중에서 백조의 형상을 조각한 조형물 |
러시아의 날씨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겨울인 기간과 겨울이 아닌 기간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1년에 6개월은 겨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예로 들자면 8월 정도가 되면 날씨가 쌀쌀해지고 빠르면 10월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5월까지 이런 겨울날씨가 계속된다. 물론 나라의 영토가 넓은 관계로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기간의 차이는 있다. 겨울철의 러시아 하늘에서 햇빛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봐야한다. 언제나 흐릿한 잿빛 겨울날씨가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모스크바 끄레믈(크렘린) 바로 옆에 있는 ‘알렉산드르 사드(알렉산드르 정원)’의 분수대와 조형물. |
여름철(6~7월)은 선글라스가 없으면 눈이 시릴 정도로 화창한 날씨이다. 일반 기숙사의 경우에는 창문 자체를 뜯어내고 살 정도로 무덥다. 에어컨 같은 건 그리 광범위하게 보급된 제품이 아니라서 흔치 않다(러시아에서 에어컨이 있는 집의 대부분은 LG제품을 사용한다). 더군다나 여름철은 백야 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모스크바의 경우 저녁 10시가 되서야 해가 진다.
제 2도시 ‘쌍뜨 뻬쩨르부르그’ 같은 경우는 11시 반 쯤에 해가 지는 것처럼 어둑어둑해지다가 새벽 2시나 3시쯤에 다시 해가 뜬다. 그래서 매년 여름 특정 기간에 뻬쩨르부르그에서는 ‘백야축제’가 열린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앞 ‘참새언덕’이라 불리우는 곳에서 찍은 사진. ‘참새언덕’은 과거에는 ‘레닌 언덕’으로 불리우던 곳이다. 배경으로 모스크바 국립대학의 야경이 보인다. |
위와 같은 단편적인 내용들과 수치들이야 숫자상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검색엔진에 러시아라고 키워드를 집어넣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런 수치들로 표현해서는 알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직접 그 나라에 가서 돌아다녀보고 그곳 사람들과 보드카를 한 잔씩 하면서 대화를 나눠봐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나는 러시아에서 학업을 핑계로 수년간 체류한 적이 있으며, 현재는 직업이 관련 계통(러시아 문화원에 다니고 있다) 이기에 한해 한 두번 정도는 일주일 정도의 짧은 출장을 다녀오곤 한다. 그러나 나는 러시아 관련 여행 전문가가 아니다. 러시아에 대한 그럴듯한 전문 지식은 더더군다나 없다. 단지 러시아란 나라 자체와 연애(戀愛)를 즐기는 사람일 뿐이다.
연애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비록 나의 연애생활이 ‘짝사랑’에 가깝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므로 아쉬움은 없다. 러시아란 나라에 대한 세세한 것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고 유쾌할 따름이다.
더불어 내 ‘연애생활’에 다른 이들이 즐겁게 동참해준다면 그것은 ‘축복’일 것이다. 노매드 관광청의 지면을 통해 나는 그 축복을 받고 싶다. 오늘의 첫 인사는 여기서 마치고자 한다. 다음에는 본격적인 러시아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뵙겠다. 다 스비다니야!!